• 권영헌 (주)서진니트 대표이사
  • 2017년 02월호, Page24
  • [2017-02-05]
  • 오윤관 기자, pichi007@naver.com
권영헌 (주)서진니트 대표이사
만능 예체능인 ‘섬유밥’ 10년 만에 강소기업 신화

카레이서 출신 40살 늦깎이로 파산 섬유업체서 데뷔
지인에 돈 떼이자 모든 것 떠안고 홧김에 직접 경영
주경야독…협력업체들 빚독촉 때마다 희망전하며 설득
원칙·정직·상생…신뢰 확인한 바이어들 계속 찾아와
450종 니트원단 중저가 전략 작년 180억 매출, 20%↑

“돈 빌려줬더니 오히려 회사를 말아먹다니…좋아 차라리 내가 한다”
이렇게 뛰어든 사나이가 섬유밥 10년 만에 매출 180억의 강소기업으로 탈바꿈시켰다. 빚쟁이들이 와글거리는 빈껍데기 회사를 기적처럼 일으키며 이젠 강소기업 반열에 올려놓은 것이다. 이쯤 되면 그 주인공이 궁금해진다. (주)서진니트의 권영헌 대표의 얘기다.
권 대표를 보면 겁 없다는 표현이 어울린다. 그는 젊은 날 스포츠와 자동차 경주에 빠지며 인생을 즐기고 있었다. 자동차 마니아인 권영헌은 액세서리 판매, 투닝, 카레이싱 등을 일삼으며 자동차와 365일 동고동락했다. 1996~1997년엔 차량튜닝콘테스트에서 연속 우승을 차지하기도 했다.
차밖에 모르던 그가 섬유업을 만난 것은 극적이다. 섬유업을 영위하고 있던 지인에게 돈을 빌려줬는데 도통 소식이 없자 직접 찾아가 보았던 것. 현장을 방문한 그는 망연자실했다.
아뿔사! 텅빈 공장에 기계는 멈췄고, 부동산은 가압류됐다. 게다가 빚쟁이들이 진치고 있었다.
“설마 했죠. 이 정도인지는 몰랐습니다” 2007년 외환위기 직전의 일이다.
“뭘 어떻게 해야 할지 감이 안 섰습니다.” 그는 충격에 현장에서 담배만 연신 피워댔다. 그날 이후 담배가 늘어 요즘도 하루 1갑 반씩 피운다고.
“휑한 공장에 네팔출신 근로자 2명만 있더군요”
권영헌은 만감이 교차했다. 잠시 시간이 흐른 뒤 현장에서 바로 결심했다. 회사를 직접 운영해보겠다고.
“이렇게 된 이상 채권자들을 위해서도, 남은 근로자들을 위해서도 누군가 책임을 져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회사를 살려낸다면 나 자신은 물론, 지인, 채권자, 근로자 모두 고통해서 구할 수 있다고 생각한 거죠.”
그날부로 자동차 관련 일을 모두 접었다.
“20년 정들었는데 묘하더군요. 그저 의협심만으로는 결정하지 않았을 거예요. 책임감? 사명감? 뭐 이런 것이 스쳤어요. 카레이싱을 통해 얻어진 도전과 응전 같은 것도 있었고요.”
섬유회사로 출근하기 시작했다. 이때가 나이 마흔 살. 하지만 그는 섬유를 몰랐다.
“막막했습니다. 섬유라곤 그저 옷밖에 모르는데…도박을 한 거죠”
왜 바보같은 짓을 했느냐는 물음에 ‘자금만회’와 ‘도덕성’이 머리를 때렸다고 했다.
“누군가 책임을 져야죠. 피해자가 무슨 죄입니까.”
“당신도 피해자 아니냐”고 묻자 권 대표는 웃음 대신 담배를 물며 당시를 회상했다.
“전 그날 채권자를 설득하며 빚을 모두 떠안기로 결심 했습니다.”
이후 권영헌은 한 걸음씩 섬유를 파고들기 시작했다. 젊은날 자동차에 열정을 쏟았던 것처럼.
협력사·채권자 등으로부터 연락이 오면 절대 피하지 않고 응대했다고 했다. 보통 사람들과는 다른 독특한 면이다.
“빚쟁이들로부터 하루 전화가 100통 넘게 올 때도 있어요. 일일이 사정얘기를 하며 설득했더니 강압적인 자세를 누그러뜨리더군요.”
“죽어라 공부했습니다. 책과 인터넷을 뒤져보고 업계 사람들과 교류하면서 지식을 넓혀갔죠. 실이 뭔지, 섬유가 뭔지 차츰 감이 잡히더라고요. 그러다 어느 순간 해볼만 하다는 자신감이 생겼습니다.
25억 원. 그는 적지 않은 돈을 7년 만에 전액 상환했다. 거의 기적이다. 기자가 대뜸 “따로 모아둔 돈이 있었거나 금수저를 물고 태어났느냐”고 묻자,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젓는다.
그의 성공스토리가 알려지자 KBS 측에서 ‘강연 100도씨’에 출연해달라는 요청을 해왔다.
‘일하면서 빚을 갚는 방법’ 그는 강연 제목까지 기억하고 있었다. “파란만장한 자신의 스토리를 주어진 15분에 설명하기엔 너무 짧다”며 “완곡하게 거절했다”고 덧붙였다.
권 대표의 인생스토리를 듣고 있다 보니 정작 (주)서진니트가 무슨 제품을 만들어 어디에 팔고 있는지가 궁금했다.
“니트류 생지를 중저가 홀세일합니다. 공장 3곳에서 450여 가지 니트 원단을 생산해 국내외에 공급해요.”
특별한 것이 없어보여 “차별화 경쟁력이 뭐냐” 묻자, 그가 말한다.
“FM(원칙)대로 합니다. 단가가 맞지 않아도 절대 함부로 만들지 않아요. 소량이고 저가라 해도 최선을 다합니다.”
이렇게 충실하다보니 제품 퀄리티가 늘고 신뢰가 쌓이면서 매출이 꾸준히 늘더라는 것. 과거 어려웠던 시절 의리를 확인한 업체들이 바이어들을 대동하고 회사를 방문하는 경우도 많다고 전했다.
서진니트는 별도의 영업부서가 없다. 마케팅도 일반 기업처럼 공격적으로 하지 않는다.
그는 대화 중 간간히 협업·정도·상생이란 말을 강조했다. 경영에서도 이를 적용하고 있는 듯 했다.
권 대표는 경영주이면서도 “직원들과 똑같은 시스템으로 급여를 받는다”고 했다.
“오너 혹은 사장이란 생각은 안 합니다. 사원의 리더 혹은 대표일 뿐이죠. 사원들에게 최대한 자율권을 줍니다. 소재 개발에 대해서도 지시보다는 협의를 중시합니다.”
권 대표는 “6~7년 몸부림치다보니 빚이 사라지고 2013년부터 BEP(손익분기점) 수준을 넘어섰다”고 했다. 지난해 매출은 180억 원, 최근 몇 년 새 20%대의 고성장을 이어가고 있다. 그는 “서진니트는 일반 기업들이 내세우는 국내 ‘최초-최고’를 앞세우기보다 정직하고 합리적인 제품으로 승부하고 있는데 강점이랄 만하다”고 했다.
회사는 지난해 중국 환경 규제 및 시스템 불안에 따른 영향 등으로 글로벌 SPA업체들의 주문이 몰려들며 호황을 누렸다. ZARA, 망고, H&M 등으로부터 대규모 오더를 받았다. 역시 그가 말한 ‘FM’대로 한 것에 대한 결과물이다. 하지만 권 대표는 “운이 좋았다”고 말한다. 그 자신의 도전과 노력을 이제는 세상이 다 아는데도… 또 겸손해 한다.
“어느덧 섬유에 푹 빠졌습니다. 이제 천직이 됐죠.”
권 대표는 지난날을 회상하며 “10년의 시간이 100년 같았다”며 다시 담배를 뽑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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