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女心 사로잡은 ‘디아넷’ 넌 누구냐
  • 2017년 06월호, Page32
  • [2017-06-05]
  • 오윤관 기자, pichi007@naver.com
지난 4월 12일 저녁 10시 무렵 롯데홈쇼핑, 여성들 전화 빈도가 예사롭지 않다.
몇 분 지나자 동시다발적으로 걸려오더니 이내 폭주 수준으로 바뀐다.
전화통은 금새 북새통으로 변했고, 콜센터 직원들은 주문받느라 정신을 못 차릴 정도다.
밤 9시 40분부터 방송된 여성의류 브랜드 마레몬떼의 바디쉐어(보정속옷) 홈쇼핑 현장이다.
롯데홈쇼핑에 따르면 이날 방송 1시간 동안 1만 1000세트의 판매실적을 달성했다. 초당 3개 이상 팔려나간 것이다.
롯데홈쇼핑 사상 단일제품 매출·시간당 판매량 등 갖가지 기록을 갈아치웠다. ‘초대박’이라는 말은 이럴 때 사용한다.
깊은 밤 무엇이 이 땅의 여성들을 열광케 했을까?
마레몬떼 보정속옷의 원천인 ‘디아넷’ 소재 때문이다. 몸에 착 달라붙으면서도 편안한 이 옷은 신축성과 복원력이 완벽하다. 제품을 사용해봤다는 30대 여성은 “착용했을 때 포근하게 감싸주는 게 마치 사랑하는 이의 마음결 같다”며 수줍어했다. 그는 “이전에 ‘디아넷’ 이름 따윈 몰랐는데 핏감이 너무 맘에 든다”고 했다.
‘디아넷(THE A NET)’, (주)제이화인(대표 김종성)이 개발한 첨단 경편 네팅(그물망 직물) 소재다.
회사를 찾아가 마력의 그 소재를 직접 만나보기로 했다.
서울 충신동에 있는 제이화인 건물에 도착하자 김종성 대표가 미리 나와 반겼다.
그는 자사제품의 대박에 ‘표정관리’를 하는 듯 했지만 한 눈에도 쾌재를 부르고 있었다.
김 대표가 자리에 앉자마자 디아넷 소재를 집더니 면 양쪽을 잡아당긴다. 어림잡아 2~3배 가량 늘어난다, 잠시 후 손을 떼자 원래 모습이다.
일그러지거나 흐트러짐도 없다. 한참 당겼다 놓았는데도 언제 그랬냐는 듯 소재가 시치미를 뗀다. 흡사 고무줄을 보는 듯 했다. 탄성이 좋다고는 하지만 저 정도일까? 신기했다.
‘저러니 여성들이 안달하는구나’
문득 친구네 모녀의 에피소드가 떠올랐다.
그의 아내와 고교생 딸이 이따금 빨래걸이에서부터 헷갈려 속옷을 바꿔 입었다가, 사이즈 차이를 알아차리고 티격태격 했다는 우스갯소리다. 이럴 때 ‘디아넷 소재’의 마레몬떼 바디쉐어 제품이라면 감쪽같았을 텐데.(웃음)
디아넷이 유명세를 타면서 마레몬떼는 추가 오더를 받아 홈쇼핑과 다른 유통업체에서 후속 판매를 준비하고 있다. 완판 소문에 또 한 바탕 시끌벅적할 게 틀림없다.
잘 만든 소재 하나가 개발업체, 브랜드, 홈쇼핑 3곳에 대박을 안겨주고 있는 것이다.
경편 직물 ‘디아넷’ 소재는 당초 마레몬떼 측의 의뢰로 탄생했다.
김종성 대표는 신소재 개발 전문가로 업계에 알려진 터다.
“마레몬떼 측에서 파워넷이란 원단을 보여주더군요. 지난 40년간 보정 속옷 원단으로 명성을 날렸는데 스트레치나 복원력이 떨어진데다 너무 오래 써서 식상하다는 거죠. 한 차원 높은 기능성 소재를 개발해줄 수 없냐고 물어왔습니다.”
40년간 수천가지의 소재를 만들어본 김 대표한테는 요청 자체가 일상이자 행복이었다.
“원하는 기능이 뭐냐고 물었죠. 편안하면서 보정이 되고 냉감 기능이 있어야 한다는 겁니다. 특히 마찰계수(몸에 부착)가 양호하면 좋겠다고 하더군요.”
그는 곧바로 개발에 돌입했다.
“‘파워넷’은 PU 210데니안인데 비해 ‘디아넷’은 40데니안으로 했어요. 고무사 2가닥씩 적용하면서 커버링을 하지 않고 밖으로 나오게 했고요. 탄성이 월등하기 때문에 마찰계수가 좋은 것은 물론 몸에 자국도 안나타나죠. 기존 ‘파워넷’ 대비 가격도 합리적입니다. 야드 당 200원 가량 비싼 정도에 그치니까요.”
김 대표는 잘 알아들을 수도 없는 전문용어를 섞어가며 신바람나게 설명한다.
암튼 디아넷은 2년 전 이렇게 탄생됐다. 마레몬테 측에서 곧바로 제품생산에 돌입했다.
김 대표는 디아넷을 개발하기 전 먼저 특허, 의장, 상표 등록을 했다. 완성도에 대한 그의 자신감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친절한 김종성 대표 이번엔 특허제목까지 알려준다. ‘압박분산을 통한 편안함을 제공하는 보정용 원단’
김 대표에 따르면 ‘디아넷’은 장력분산을 통한 편안함을 제공하며, 보정력을 증가시킨다. 탄성회복율은 기존 제품들보다 40% 상승, 접촉냉감은 40% 뛰어나다. 누가 봐도 월등한 차별성이다.
대학에서 섬유공학을 전공한 김 대표는 태평염직에서 첫발을 내딛고 주로 개발을 담당했다. 염색공장과 실험실 연구실을 거쳐 서울 무역부에 근무하면서 글로벌 마케팅 감각을 익혔다.
이후 1992년 현재의 (주)제이화인을 설립했다.
그는 초창기 명품보다는 중저가 매스 프로덕션 위주로 사업을 전개했다. 하지만 개발에 치중하면서 테크닉의 중요성을 실감했고, 소재의 고도화·차별화는 결국 기술력의 차이라고 느꼈다. ‘고부가가치 명품소재 개발’로 패러다임을 바꿨던 것.
그는 이후 신소재 개발에만 몰입했다. 세상에 없는 신기술·신제품만이 명품이 될 수 있고 명품이야말로 자신의 존재감이라고 판단했다는 것.
“연구개발에만, 거짓말 좀 보태면 수백억 까먹었을 겁니다. 그래도 개발이 재미있는 데 어떡합니까. 세상에 없는 신소재를 탄생시켰을 때의 희열이란 경험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르죠”
그는 현재 특허만 30여개 보유하고 있다.
(주)제이화인은 김 대표를 포함 구성원 4명의 꼬마 회사다. 그런데 이 회사, 노는 물이 다르다.
조르지오 아르마니, 루이비통, 프라다, 티파니 등 12개 글로벌 명품브랜드와 교류하고 있다.
매출의 70% 가량은 이탈리아 명품 브랜드 조르지오 아르마니에서 나온다. 특히 아르마니와의 관계는 보통 이상의 밀월 관계다.
아르마니 측에서 먼저 러브콜을 보내왔다.
김 대표는 아르마니와의 인연을 소개했다.
“10년 전 파리 텍스월드에 참가했을 땝니다. 당시 한국에서도 업체 다수가 참가했는데 아르마니 측에서 디자이너 20여명을 풀어 코리아 부스에서 샘플을 모두 수거한 뒤 분석에 들어갔다는 거예요. 이 때 제가 만든 제이화인 제품도 물론 포함됐죠. 얼마 있다가 반응이 왔어요. 아르마니의 사장이 직접 살펴본 뒤 제이화인의 제품을 제외하곤 모두 일본이나 프랑스 것을 베꼈다는 거예요.”
김 대표는 당시를 회상하며 제이화인을 간택해준 것은 운이 좋았다고 겸손해 하면서도 나 자신이 100% 자체 개발했기 때문에 그 사람들 눈이 역시 정확했다고 했다.
“아르마니 사장이 직접 묻더군요. 저에게 던진 첫 질문이 ‘무슨 생각으로 그런 원단을 개발했느냐’는 거예요. ‘아이디어를 통해 자체 개발했다’고 하자, 그가 갸우뚱하면서 ‘그렇다면 일본과 기술제휴를 했느냐’고 다시 물어요. 전 자신있게 말했죠. ‘난 카피에는 전혀 관심이 없다. 내가 만드는 제품이 자랑스럽고 개발이 그저 재미있다. 난 영감이 떠오르면 바로 개발에 돌입한다. 주로 자연을 통해 상상한다’라고요.”
아르마니 사장은 신기하듯 김 대표를 바라보면서 뭔가 확신하는 표정을 짓더라며 당시 상황을 전했다.
김 대표는 이 같은 자신감은 원료에 대한 원천 프로세스를 알고 있기 때문이라고 귀띔했다.
이후 아르마니 측에서 김 대표에게 제안을 한다.
섬유소재를 3D 임펙트로 만들어줄 수 있느냐고.
김 대표는 흔쾌히 응하면서 당돌하게도 아르마니 측에 역제안을 한다.
“만들어주겠다 했지요. 하지만 ‘내 생각에는 앞뒤로 요철이 가능한 입체 소재가 더 나을 듯 한데 둘 다 만들어줄 테니 알아서 써라’면서 두 개를 만들어 보냈어요.”
김 대표의 자신감과 배짱이 아르마니 대표를 압도하는 모습이다.
2년 전 개발한 3D제품은 현재 신세계백화점 ‘아르마니 화이트라벨’ 매장에서도 여성 아우터 제품으로 쉽게 만날 수 있다.
김 대표는 앞서 소개한 마레몬떼에 적용한 ‘디아넷’ 소재의 품질을 아르마니 사장이 문서로 보증해줬다며 집무실 벽에 걸린 친필 싸인 보증서를 보여주기도 했다.
섬유기술사인 김종성 대표는 구조식 전문가이자 기능성 우븐 직물 개발자다.
경편(네트)보다는 교직물 전문가로 명성을 떨쳤다. 하지만 섬유과정의 프로세스를 꿰뚫고 있어, 현재는 종류를 가리지 않고 신기술 원단을 개발하고 있다.
그래서 지금까지 돈을 벌었냐고 했더니 돈 버는 데는 그리 큰 흥미를 느끼지 못한 것 같다고 했다.
“다른 사람들에 비해 별로 관심이 없었던 것 같아요. 돈이 좀 모인다 싶으면 개발하고 또 투자해 개발하고 그랬으니까요. 하기야 그 돈으로 부동산을 했으면 큰 돈을 벌었겠네요.(웃음)”
“그래도 돈을 벌여야 하지 않냐”고 묻자 알 듯 말 듯 다시 웃는다.
“돈이 쥐어지면 어쩌면 또 개발하게 될 것 같아요. 개발 투자에는 전혀 아깝지 않거든요. 세상에 없는 제품이 제 손으로 탄생됐을 때의 희열, 정말이지 짜릿합니다.”
제이화인은 현재 5~6가지 주력 우븐소재를 국내 L패션, A섬유, Y섬유 등과 파트너십을 맺고 있다. 큐프론(Cupron) 또한 제이화인의 간판 아이템이다. 수분율이 15%인 cupra를 13% 사용해 땀을 흡수하고 정전기도 없어 반영구적 친환경 소재다.
김 대표는 현재 디아넷의 후속 신버전을 준비 중이라며 또 개발 얘기를 꺼낸다.
(회사 밖으로 나오면서 하마터면 그에게 ‘개발 중독자’라는 말을 해버릴 뻔했다.)
<저작권자(c)패션리뷰. 무단전재-재배포금지.>
  • 패션리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