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자인, 서효석 대표
  • 2017년 07월호, Page28
  • [2017-07-11]
  • 오윤관 기자, pichi007@naver.com
中소재로 만든 뒤 한국서 옷장사, ‘적폐’ 아닙니까?
-서효석 (주)자인 대표 목청-

저가 중국산 밀물…고품질 국산소재 고사될 판
당국은 말로만 섬유 지원, 언론도 적극 나서줘야

“언론이라도 국산 소재 사주기에 좀 더 적극 나서주면 안되나요? 이러다가 국내 섬유산업 기반이 송두리째 뽑히게 생겼어요”
기자가 지난달 대구에 있는 (주)자인을 찾았을 때 서효석 대표의 첫 마디다. 그는 인사말이 끝나기 무섭게 맘속에 담아둔 말을 쏟아냈다.
서 대표는 “국내 구매자들이 값싼 원단을 찾으며 중국 좋은 일만 하고 있다”며 “이러다간 중국에 다 내주게 생겼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기자가 “결국 이 같은 상황도 ‘보이지 않는 손에 움직이는 시장경제’로 봐야하지 않느냐”고 반문하자, “그렇다면 당국과 언론은 왜 존재하느냐”며 이들의 조정자 역할에 대한 소극성에 강한 서운함을 드러냈다.
대구 현지 업체들에 따르면 6월 현재 대구지역 제직 가동률은 60%에 그치고 있고, 이는 사상 최악 수준이다. 서 대표의 분노에 토를 달 수 없는 상황이다.

●(서 대표의 얘기가 이어진다)
중국산 수입(소재)이 반만 줄어도 국내 섬유산업이 살아날 겁니다. 너도나도 싼 것만 찾다보니 국내 원단 기업들이 죽어날 판입니다. 이탈리아, 프랑스, 한국, 대만 소재 메이커들이 많습니다. 이중 유독 한국이 고전하고 있는 것은 제살깍기 거래가 횡행되고 있기 때문이죠. 이 또한 ‘적폐’로 보입니다. 중국과 동남아에서는 카피가 난무하고 단가도 후려치다보니 가운데에 낀 건 한국이고 우리 같은 업체는 갈수록 설 땅이 없어요. 당국은 말로만 섬유산업 살리겠다하는데 실상은 그렇지 않습니다.
●좀 더 말씀해주시죠.
섬유산업 자체가 기능할 수 있게 해야 합니다. 창고에 재고가 쌓이고, 회사가 도산하는데 섬유업의 연결 고리가 제 기능을 할 수 있을까요? 그런데, 서울 지역만 해도 ‘고리’가 있습니다. 기존의 파트너십을 기반으로 거래 네트워킹을 이어가고 있다는 거죠. 공개입찰 등을 통해 좋은 제품을 생산해내는 회사가 앞에 서야 하는데, 일종의 카르텔의 벽에 부딪혀 다른 업체들은 힘을 못 쓰고 있습니다.(이 역시 시장경제와 역행하는 모습이다.) 개발·생산 잘하는 사람과 구매자가 최적으로 만나 시장구조를 건강하게 순환시켜야 하는데 말이죠.

●그렇다면 자인의 경쟁력이 궁금해집니다.
메모리 원단, 나일론 스판 분야에서 열심히 대응하고 있습니다. 초경량 스판소재 ‘익스트림 마이크로3’는 글로벌 시장에서 이미 정평이 나있습니다. 국내 품질대상 행사에서도 최우수 제품상을 받은 바 있고요. 시장에서는 가장 이슈적인 것, 임펙트가 있는 제품만이 초대받는다는 걸 잘 압니다. 같은 샘플이나 어설픈 원단으론 살아남지 못합니다. 바이어들이 외면하잖아요. 뭐 신제품, 고퀄리티를 기반으로 한 시장 신뢰를 회사의 강점으로 들 수 있겠네요.
●경쟁력은 어디서 나옵니까.
우선 한 가지만 말씀드린다면, 매월 한 차례 1시간 반 가량 전 직원을 상대로 교육을 합니다. 섬유관련 교육? 아녜요. 인문학을 주로 학습하죠. 뭐 차별화인 셈이겠네요.
●(흥미로웠다)인문학을요?
원사, 원단, 제직, 디자인, 염색, 마케팅 등 섬유 기업에서 다져야할 베이스입니다. 그러다보니 놓치는 부분이 있어요. 인성과 휴먼브랜드의 함양입니다. 무형의 경쟁력이죠. 휴먼브랜드야말로 지속가능 경영을 위해서는 필요충분한 부문이라 생각합니다. 다음 달 초(7월 3~4일) 서울에서 열리는 아시안 리더십컨퍼런스(ALC)에도 참석할 예정입니다. 이 자리에서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의 연설을 듣고 내 자신의 생각을 변화시켜볼 계기로 삼아보려고요. 그와 사진 찍고, 짧게나마 소통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면 좋겠지만, 그게 어디….

●현재 대학원에서 만학의 열정을 불태우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대학원에서 석사과정 5학기를 마친 상태고 박사과정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경영학을 공부했지만 논문은 ‘휴먼 브랜드의 영향력’에 관한 내용으로 써볼 계획입니다. 일종의 리더십의 고찰입니다.

●복리후생으로 직원 이직률이 적다면서요.
직원 자녀가 취학할 때 유치원 50만원, 초등학교 100만원, 중학교 200만원, 대학교 300만원을 지원합니다. 아예 사규로 정해놓았어요. 그래선지 애사심이 높아지고 이직률이 거의 없는 편입니다. 직원 삶의 질을 높여주는 것도 경영인의 몫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 회사에서는 담배피우는 사람한테 절대 월급을 올려주지 않습니다. 회사 구성원들이 그의 가족을 위해 무엇을 취하고 무엇을 버려야 하는지를 일깨워주자는 것이죠. 인문교육의 연장선이라고 봐도 무방합니다.

●(그가 다시 국내 섬유업계의 ‘출혈경쟁’ 관행에 대한 얘기를 꺼내자) 세미나, 포럼, 협단체 행사 등에서 이 같은 목소리를 강하게 내보시는 게 좋을 텐데요.
물론 노력하고 있습니다. 대구시에도 ‘시장을 중심으로 서울에 올라가 삼성, LG, 형지, 신원 등을 방문해 세일즈 해보자’ 건의를 해봤죠. 하지만 ‘신성장 동력’을 찾는 데만 관심을 갖는 모양입디다. 섬유산업은 신성장 동력이 아닌가 보죠 뭐. 말로는 아니라고 하면서 섬유는 사양산업으로 인식하고 있는 것 같아요. 대구는 적어도 섬유산업이 주력인데 지원에는 소극적입니다. 그러니 언론이라도 앞장 서 주시라고요. 답답해서 해본 소립니다.

●앞으로 회사는 어떻게 전개하실 겁니까.
친환경 섬유를 만들고 싶습니다. 또 의류 외 분야에 영역을 확대하려고 합니다. 이불은 한 지가 3년 됐습니다. 섬유-의류 포지션을 50% 가량 줄이고, 침장, 가방 등 산업 쪽으로 넓혀갈 생각입니다. 최근엔 대당 7억 5000만원 하는 경편기계 2대를 독일에서 도입했습니다. 아라미드로 오토바이 특수복 같은 건 이미 만들고 있고요. 마찰 때 화상과 찢김을 막는 신개념 원단인데요, 신사업에 전문가들로 채워놓았습니다.

●지난해 잘 하신 걸로 압니다. 영업망도 소개해주십시오.
25% 성장했습니다. 140억 매출 올렸으니 나쁘지는 않은 셈이죠(이쯤 되니 위에서 말한 내용이 엄살처럼 들렸다). 2014년 80억까지 떨어졌는데 이때 바닥을 친 뒤 2015년 92억을 올렸습니다. 마케팅은 해외전시회와 국내 브랜드 타깃에 비중을 두고 있습니다. 해외는 중국·미국에 에이전트 파트너를 두고 있습니다. 중국 시장이 20% 비중인데 바이어 니즈를 파악하면서 자주 접촉하고 있어선지 비교적 탄탄하게 유지하고 있습니다.

●짐작은 됩니다만, 지역 섬유산업은 어떤가요.
성서공단을 비롯해 이 곳 가동률이 줄잡아 이달(6월) 기준 60% 수준이라는 분석입니다. 사상 최악이죠. 브랜드들도 마찬가지에요. 값싼 중국 소재를 사용해 옷을 만들어 이를 한국에 팝니다. 대구만 해도 최근 제직기들이 많이 멈춘 것으로 압니다. 폐업을 준비하는 곳도 있다고 들었습니다. 미리 폐업을 준비하는 사람은 그나마 나은 사람들일 거예요. 부도에 숨을 헐떡이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앞으로가 문제입니다. 돌파구가 안보입니다.

●앞으로를 전망하신다면.
34~5년 업력을 갖고 있지만 늘 어렵습니다. 100명 중 3~4명 정도가 살아남는 게 이 직종이 아닙니까. 똑같은 말이지만, 끊임없는 연구개발이 수반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화섬의 경우 앞으로는 친환경이 아니면 살아남지 못할 것입니다. 이미 유럽 등 선진국에서는 유해 성분이 있는 불소 사용을 제한하고 있잖아요. 자인의 경우 매출의 3~5% 정도(5억원 규모)를 연구개발에 투자하고 있습니다. 친환경 혁신제품개발을 위한 것이죠. 앞으로는 아이템의 다양화가 대세라고 생각합니다. 인구감소 등으로 내수시장이 줄어들 것은 자명합니다. 실버세대들의 지갑을 타깃으로 해야 합니다. 한국도 글로벌 럭셔리 브랜드가 아니면 쉽지 않을 겁니다. 말씀드리지만 섬유야말로 인류가 존재하는 한 영원합니다. 사람이 옷을 입고 행복해지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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